30년의 성장기

30년의 성장기

나를 얼굴이 아니라 글로 접하신 분들은 내가 나이가 꽤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시겠지만, 사실 나는 이제 고작 만 30세가 된다. 정확히는 올해 8월 14일에 만 30살이 된다. 많다면 많고(크립토 업계에서는 꽤 있는 편으로…), 적다면 적은 나이이겠지만, 나는 생일마다 지난 1년간 느꼈던 것들, 그리고 앞으로 발전해야 할 부분들을 기록하고, 매년 내가 성장했는지를 적어 두려고 한다.

1.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교사는 반면교사다

내 삶에는 오타니 같은 롤모델도 있지만,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라는 기준을 줬던 사람들이 더 많다. 오타니는 내가 정말 닮고 싶지만, 닮으려고 할 때마다 인간의 차원을 아득하게 벗어나는 행동들을 보여줘서 오히려 내가 쫌생이처럼 보이게 만든다. 물론 오타니는 내가 인간으로서 가장 가고 싶은 종착지와도 같은 사람이다. 그럼에도 현실적으로 지금 내가 가장 많이 참고하는 사람들은, 오타니 같은 롤모델이 아니라 그 반대의 ‘반면교사’들이다.

2023년 이후로 포필러스나 내 삶은 전부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을 중심으로 설계해 왔다. 내 삶이나 포필러스에서 중요한 결정을 할 때마다, 나는 내가 봐왔던 최악의 결정들을 복기하며 “그 반대로만 해도 절반은 간다”라는 마음으로 임했다. 그 결과물들은 상당히 좋았다고 자신한다.

나는 동업자들과 주식을 최대한 균등하게 나눴고, 지분이 아닌 실력으로 증명하고자 했다(이는 지금도 같다. 내가 대표로서 존중받으려면 실력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내가 지금도 리서치를 하고, 앞으로도 리서치를 놓지 않을 이유다). 팀원들에게 최대한 많은 정보를 공개했고, 동업자들의 특권의식을 내려놓았으며, 콩 한 쪽이라도 모두와 나누려 노력했다. 앞으로도 나는 이러한 기준들을 바탕으로 포필러스를 만들어 나갈 것이다.

누군가는 “무조건 반대로 하는 게 좋은가?”라고 물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반대의 대상이 무엇이냐에 따라 다르다”고 답하고 싶다. 사실 그 반면교사는 2023년 이전의 나 자신일 수도 있다. 나는 한때 정말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며, 고집도 세고, 피해의식도 강했고, 방어기제도 심한 사람이었다. 다양한 일을 겪었기에 오히려 지금과 같은 행동을 할 수 있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

내가 가장 따르고 싶은 리더의 모습은, 내가 가장 따르기 싫은 리더의 ‘정반대’일 것이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래서 여러분도 삶을 살면서 정말 별로인 리더들을 만나는 경험이 나중에 인생에서 훌륭한 자산이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물론 당장에는 힘들 수 있지만, 그 사람의 행동, 말투, 동기를 철저히 관찰하고, 자신이 그런 위치에 올 때 절대 반복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성공한 것이다.

반면교사에게 감사하라.

2.우문현답: 우리들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있다

최근 아버지와 단둘이 있는 시간이 많았는데, 아버지가 기발한 슬로건을 생각해 내셨다며 자랑을 하시더라. 그게 뭐냐고 물어보니, “우문현답: 우리들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라고 하셨다. 너무 아재 개그 같아 나는 썰렁하게 웃고 넘겼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저 슬로건이야말로 아버지의 평생 철학이 담긴 말이 아닌가 싶다.

내 아버지는 가정 형편이 어려워 고등학교밖에 나오지 못하셨다(물론 지금은 뒤늦게 대학교에 진학해 무려 석사 학위까지 따셨다). 심지어 중학교와 고등학교 시절에는 학비가 없어 스스로 벌기 위해 중학생 때 1년, 고등학생 때 또 1년을 쉬고 아르바이트를 하셨다. 그래서 아버지의 중학교 동창은 아버지보다 한 살 어리고, 고등학교 동창은 두 살 어리다.

그런 아버지가 나중에는 공기업 임원도 하고, 중견기업 부회장 자리에도 올랐다. 대학교와 대학원 학위는 돈을 벌고 나서 취득하신 것이기에, 사실 아버지가 이룬 모든 것은 학력 없이 이뤄낸 것이나 다름없다. 누군가 그 노하우를 물어보면, 아버지의 대답은 늘 “탁상공론이 아닌 현장, 이론이 아닌 실전”일 것이다.

나 역시 그런 아버지에게 큰 영향을 받았다. 그래서 내가 리서치 회사를 운영하는 이상, 리서치를 그만두는 일은 없을 것이다. 리서치 회사에 문제가 생긴다면, 그것은 결국 리서치의 문제일 것이고, 리서치를 해봐야 그 문제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회사가 어떤 방향으로 성장하고 확장하든, 나는 앞으로도 언제나 현장에 있고 싶다.

3.어디까지 몰입하고 미칠 수 있는가 (꾸준함의 힘)

나는 태어나서 나 자신과의 약속을 어긴적이 한 번도 없었다.

스즈키 이치로

얼마 전 놀라운 일이 있었다. 일본을 대표하는 야구선수인 스즈키 이치로가 아시아인 최초로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것이다. 득표율도 놀라웠는데, 명예의 전당 투표를 하는 기자들 중 한 명을 제외하고 모두 이치로에게 표를 줄 정도로 압도적인 수치(99.75%)였다. 이치로가 수많은 야구인과 스포츠인들에게 존경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이치로가 지닌 미친 듯한 프로 정신, 야구에 대한 광적인 몰입, 그리고 병적일 정도의 꾸준함에 있다. 그는 선수 생활 동안 매일 똑같은 시간에 자고,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며, 똑같은 시간에 식사하고, 똑같은 시간에 훈련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또 식단에서 변수를 줄이기 위해, 선수 생활 내내 같은 음식만 먹었다(7년 동안은 카레만, 이후로는 피자만). 허리에 부담을 줄이기 위해 평소 푹신한 소파에는 앉지 않고, 늘 딱딱한 철제 의자만 사용했으며, 인바디 측정 시 체지방률과 근육량을 항상 동일하게 유지했다고 한다.

부상을 피하기 위해 경기 중 무리한 슬라이딩이나 공격적인 플레이를 전혀 하지 않았으며, 실제로 “부상을 당하는 것도 실력이다.”라는 말을 남긴 적도 있다.

이러한 광적인 집착은 경이로운 기록을 만들어냈다. 그는 만 27세라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메이저리그에 진출했음에도, 메이저리그 통산 3,000안타, 단일 시즌 최다 안타, 10년 연속 200안타, 골든글러브 10회, 신인왕과 MVP 동시 석권 등 놀라운 업적을 남겼다. 많은 사람들이 이치로에게 경외심을 표하는 이유는 단순한 통산 기록보다도 ‘꾸준한 성적’에 있다. 27살이라는 나이에 메이저리그에 입단해 38살까지 매 시즌 200안타를 생산했다는 건 경이로운 일이다.

대부분의 메이저리그 선수들은 전성기가 짧게는 1년, 길게는 5년 정도이며, 그중에서도 진짜 전성기라 부를 수 있는 시기는 2~3년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치로는 무려 10년 동안 성적의 큰 기복 없이 전성기를 유지했다.

재능일까? 꾸준함도 재능이라면, 그것 또한 이치로의 타고난 재능일 것이다.

나는 과연 이치로만큼 어떤 것에 광적으로 몰입한 적이 있었을까? 물론 그는 너무도 특별한 아웃라이어라, 그와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사람이 존재하는데, 나는 삶을 너무 쉽게만 생각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인가 안 된다고 불평하기 전에, 나는 정말로 이치로의 절반, 아니 10%라도 해본 적이 있는가?

더 몰입해야겠다. 더 꾸준해야겠다. 더 스스로를 관리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세계 최고를 목표로 한다면, 이치로 정도는 해야 하는구나 싶었다.

4.감정을 절제하자.

위에 “우문현답”이라는 명언을 남기신 아버지는 스스로를 평가할 때 자신의 단점을 “욱하는 것”이라고 답변하시곤 하셨다. 아버지는 정치 쪽에 계셨을 때도, 당신의 상관이던 권력자이건 본인이 보기에 부당하다고 느끼는 일은 거부하셨을 뿐만 아니라, 소리를 지르며 노발대발하셨던 분이다. 그 덕분에 아버지는 정치 쪽에 계실 때 요직에 오른 적은 없다. 물론 아버지는 그걸 “내 실력이 부족하고 학력이 부족한 탓”이라고 하시지만, 나는 100% 그게 아버지의 성격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어떤 상관이 아버지 같은 사람을 좋아하겠는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살아왔지만, 나 역시 보고 자란 것이 아버지다 보니 아버지와 많은 부분이 닮았다. 아버지는 부당하다고 느끼는 것에만 화를 내셨던 것 같은데, 나는 부당하다고 느끼는 것을 제외하고도 그냥 마음에 안 들면 화를 내고 노발대발하는 것 같다. 아버지의 더 안 좋은 버전이라고 할까.

특히 내 이러한 단점이 더 도드라졌던 순간이 이번 모멘텀·이카·아이리스·이클립스 사건이었다. 나는 이 세 프로젝트가 모두 부당한 행동을 했다고 생각했다. 우선 모멘텀은 고작해야 150M TVL밖에 안 되는 프로젝트가 자신들의 토큰을 약 300M 밸류로 측정해 커뮤니티에 랜덤으로 락업과 베스팅을 걸어 팔려고 했다. 토큰에 대한 구체적인 유틸리티를 명시한 것도 아니고, 자신들이 팔려고 했던 NFT의 구체적인 혜택도 설명하지 않았다. 가장 화가 났던 건, 300M 밸류에이션의 기준이 “자신들이 내부적으로 측정한 것”이었다는 점이다. 이걸 리테일들에게 판다는 건 내 입장에서는 기만이고 사기에 가까웠다. 그래서 나는 이 이슈에 대해 국문과 영문으로, 그리고 파운더에게도 굉장히 직설적으로 화를 냈다.

나중에 모멘텀 파운더와 나눈 이야기지만, 그는 내가 너무 공격적인 나머지 “위협적(threatening)”이었다고 회고했다. 물론 이들이 잘못한 건 맞지만, 내가 굳이 그렇게까지 분노했어야 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메시지는 옳았지만 방식은 옳지 않았다고 본다. 이카(KYC 한국 차단, 토큰 에어드롭 사전 공지 없이 락업)나, 아이리스(월루스를 dApp이라고 잘못 표기해 전달한 점, 우리가 월루스를 옹호하자 “월루스가 돈을 제일 많이 줘서 우리랑 일 안 하고 월루스랑 일하는 거 아니냐”는 근거 없는 발언)나, 이클립스(말해 뭐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앞으로도 이 업계에 있다 보면 기상천외한 일들이 많을 것이고, 이보다 더 심한 일들도 많을 것이다. 그렇기에 올바른 메시지를 담되 불필요한 감정은 덜어내는 연습을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스캠은 스캠이다.

5.연애와 사업은 어렵지만

작년의 회고에도 난 연애가 어렵다고 이야기 한 바 있다. 이에 대한 생각은 여전히 같다. 연애도 그렇고 사업도 그렇고, 쉬운 게 하나도 없다. 연애와 사업이 비슷한 부분도 있고 아닌 부분도 있지만, 결국 이들 모두가 ‘사람에 대한 것’이라는 공통점은 있다. 다만 사업이 공적이라면, 연애는 사적이라는 점이 다르다.

사업은 어느덧 한 지 2.5년이 됐고, 연애는 어느덧 한 지 200일이 넘었다. 확실한 것은 이 두 가지를 하면서 정말 많이 깨지고 많이 성장하고 있다는 거다. 아직까지 눈에 띄게 체감하긴 어렵지만, 사업을 하면서 인내심도 나름 많이 기르고 있고, 이타심도 후천적으로나마(?) 기르는 중이다. 연애도 마찬가지다. 200일 넘는 시간 동안 연애를 하면서 내 자신의 단점들도 많이 자각하게 되었고, 그것을 고치고 있다.

사업은 감사하게도 나를 이해해 주는 팀원들과 동업자들이 있기에 많이 깨지면서도 회사를 그럭저럭 잘 유지할 수 있었고, 연애 역시 감사하게도 나를 이해해 주고 버텨 주는 여자친구가 있기에 내가 문제가 많음에도 200일 동안 관계를 유지해 올 수 있었지 않나 싶다. 결국 연애든 사업이든 성공하려면 인복이 있어야 한다고 느낀다. 그리고 둘 다 힘들지만, 그 힘듦을 상쇄하는 행복이 있고, 나라는 사람도 결과적으로 성장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6.생일은

원래 생일은 나에게 별 큰 의미가 없는 이벤트였지만, 이제는 뭔가 조금 의미가 생긴 것 같다. 앞으로는 생일마다 내가 더 나아졌는지에 대해서 스스로 질문하고 따져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내가 내 입으로 “난 더 나아졌어.” 하는 게 자기 위로 말고 뭐가 더 되겠냐만, 그래도 이렇게 기록을 해 놓음으로써 내가 당시에 어떤 다짐을 했고 어떤 목표를 가졌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스스로 되뇌일 수 있기 때문에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남는 것은 글이다. 내가 글쟁이임에 감사하고, 앞으로도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끝.